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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T의 악순환 고리와 증상 네트워크는 같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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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행동치료(CBT)를 받아 보았거나 해 보았다면, 어느 자리에서였든 그 도식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생각 상자, 감정 상자, 행동 상자, 때로는 신체 반응을 위한 네 번째 상자 — 그리고 그 사이를 도는 화살표들. 걱정스러운 생각이 가슴을 조이고, 조인 가슴이 무언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확인시키고, 그 확인이 다음 걱정을 불러온다. 이른바 악순환 고리다.

이번엔 설문 데이터로 추정한 증상 네트워크를 보자. 개별 증상을 나타내는 노드, 다른 모든 것을 통제한 뒤에도 남는 연관을 나타내는 엣지. 걱정은 안절부절과 이어지고, 안절부절은 수면 문제와 이어지고, 수면 문제는 다시 걱정 쪽으로 돌아온다. 낯익은 감각이 밀려온다. 우리가 몇 년째 그려 온 바로 그 그림 아닌가.

그렇다면 둘은 같은 생각일까. 솔직한 답은 쌍둥이가 아니라 사촌이다. 그리고 이 차이는 곱씹어 둘 가치가 있다. 매력적인 닮음이 조용히 오해를 부르는 자리가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다.

CBT 악순환 고리와 추정된 증상 네트워크 대조

닮음이 진짜인 지점

닮음은 착시가 아니다. 아니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겸손을 가장한 부정확함일 것이다. 두 그림은 낡은 “숨은 질병” 서사와 갈라서는 세 가지 전제를 공유한다.

첫째, 둘 다 피드백을 진지하게 다룬다. 어느 쪽도 증상을 그 뒤에 앉은 숨은 원인의 수동적 표시로 보지 않는다. CBT 고리에서도 네트워크에서도, 요소들은 서로에게 작용한다. 나간 화살표가 돌아온다.

둘째, 둘 다 부분(구성요소) 중심이다. 하나의 요약 점수가 아니라, 부분들과 그 사이의 배선에 주목한다. “이 사람은 우울 점수가 높다”고만 말하는 CBT 사례 개념화는 쓸모가 없다. 생각이 회피를 먹인다고 짚어 낼 때 비로소 작동한다. 네트워크는 같은 동작을 형식화한 것이다 — 커플링을 스케치가 아니라 추정으로 얻은 사례 개념화라고 볼 수 있다.

셋째, 둘 다 근본적으로 한 사람 안에서 시간에 따라 펼쳐지는 과정에 관한 것이다. 고리는 돈다. 네트워크도, 적어도 개인 수준(idiographic) 형태에서는, 한 사람의 증상들이 며칠·몇 주에 걸쳐 서로를 미는 방식에 관한 주장이다.

이 세 겹의 겹침은 진짜다. 네트워크 틀이 많은 임상가에게 낯선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다가온 이유가 여기 있다. 이것은 재발견의 사례다 — 네트워크 형식은 실무자들이 이미 손으로 알고 있던 것을 되찾아 낸다. 이 점을 인정하는 것은 두 전통 어느 쪽에도 위협이 아니다.

둘이 갈라서는 지점

그러나 재발견은 동일함이 아니다. 여기서 유용한 구분이 시작된다.

CBT 고리는 임상적 가설이고, 네트워크는 추정치다. 화이트보드의 네 상자 도식은 사례 개념화 — 이 사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치료자의 구조화된 추측이며, 면담에서 세우고 협력 속에서 다듬고 언제든 고칠 만큼 느슨하게 쥔다. EBICglasso로 추정한 증상 네트워크는 통계적 대상 — 공분산 구조와 정규화 페널티를 지니고, 제대로 했다면 부트스트랩 신뢰구간까지 딸려 온다. 하나는 논의하려고 그린다. 다른 하나는 검증하려고 계산한다. 손으로 그린 고리를 추정된 그래프의 증거적 지위처럼 다루거나, 추정된 그래프를 완성된 임상 개념화처럼 다루는 것 — 문제는 이 혼동에서 시작된다.

고리는 내용이 풍부하고, 네트워크는 내용이 얇다. 화이트보드의 화살표는 를 말한다. “그가 창피를 당할 거야라고 생각하면 약속을 취소하고, 그 안도감이 다시 취소를 가르친다.” 이것은 의미가 담긴 기제다. 네트워크 엣지는 두 증상이 나머지를 고정했을 때 연관된다는 사실만 말한다. 이야기에 대해서는 일부러 침묵한다. 이 얇음은 결함이 아니라 특징이다 — 연구자의 이론을 몰래 섞지 않고 데이터에서 추정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이 얇음이다. 다만 그래프는 임상적 서사를 건네주지 않는다. 그건 여전히 당신이 채워야 한다.

수준이 다르다. 출판된 대부분의 네트워크는 집단 수준(nomothetic) — 여러 사람에 걸쳐 추정한 평균적 구조다. CBT 고리는 고집스럽게 개인 수준(idiographic) — 방 안의 그 한 사람에 관한 것이다. 이 둘은 교환 가능하지 않다. 평균에서 성립하는 구조가 특정 개인에게도 성립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 네트워크 심리측정 자신이 목소리 높여 지적해 온 지점이다. 집단 네트워크와 개인 고리가 일치하는 것처럼 보일 때, 그 일치는 가정할 사실이 아니라 확인할 발견이다.

남겨 둘 가치가 있는 긴장

여기서 깔끔한 결론에 저항하는 것이 좋다. 네트워크는 그저 “엄밀해진 CBT”, 고리가 마침내 방정식을 얻은 것이라고 말하면 편하다. 하지만 그 말은 무언가를 납작하게 만든다.

CBT 사례 개념화와 네트워크 추정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당기는 서로 다른 지적 전통에 속한다 — 그리고 둘을 하나로 뭉개기보다 둘 다 시야에 두는 편이 더 유용하다. 임상 개념화는 의미·개별성·수정 가능성을 귀히 여긴다. 한 삶에 대한 작업 가설로 남는 데 만족한다. 네트워크는 추정·일반성·반증 가능성을 귀히 여긴다. 데이터에 비추어 검증받고자 한다. 앞의 것은 묻는다. 이것이 이 사람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뒤의 것은 묻는다. 데이터가 어떤 구조를 지지하는가? 어느 물음도 다른 물음으로 녹아들지 않는다. 추정된 그래프를 개념화로 취급하는 임상가는 의미를 잃고, 개념화를 추정치로 취급하는 연구자는 엄밀함을 잃는다.

둘 사이의 닮음은 진짜다 — 그러나 그것은 전통의 병합이 아니라 전통을 가로지르는 번역이다. 그리고 번역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고리에는 그래프가 담지 못하는 것이 있고(그 특정한 믿음, 회피를 강화하는 안도감), 그래프에는 고리가 주장할 수 없는 것이 있다(신뢰구간, 안정성 계수, 일반화되는 구조). 어느 방향으로든 하나를 다른 하나로서 읽으면, 건너오지 못한 것이 조용히 버려진다.

실무 임상가에게 이것이 주는 것

이 모두는 추상적 정리 작업이 아니다. 수년간 고리를 그려 온 사람이 네트워크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바꾼다.

당신의 사례 개념화에 대한 동료의 두 번째 의견을 다루듯 네트워크를 쓰라. 유익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하고, 마지막 말은 아니다. 추정된 네트워크가 당신의 고리에 화살표가 있는 자리에 엣지를 놓는다면, 그것은 기록해 둘 만한 뒷받침이다. 당신의 개념화에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 강한 엣지를 놓는다면, 다시 볼 신호다 — 사람을 다시 볼 수도, 모델을 다시 볼 수도 있다. 어떤 증상이 높은 중심성에 앉는다면, 그것은 추정된 구조 안에서 그 증상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다 — 주의를 기울일 만한 자리다. 그러나 그 자체로 거기 개입하면 나머지가 움직인다는 판정은 아니다. “이 그래프에서 중심적”에서 “이것부터 다뤄야 한다”로 넘어가는 걸음은 임상적 판단과, 그래프가 보증하지 않는 인과 가정을 통과한다. 건너뛰지 말고 신중히 디뎌야 한다.

그렇게 쥐면 두 그림은 경쟁하지 않는다. 고리는 의미를 대고, 네트워크는 추정의 규율을 댄다. 둘 다 지녀서 잃는 것은 없고, 둘이 같은 것이라고 결정하는 순간 실제로 무언가를 잃는다.


이 글은 네트워크 심리측정의 계보와 방법을 다루는 연재의 일부입니다. 네트워크 관점은 임상적 사례 개념화를 대체하지 않으며, 이 글의 어떤 내용도 진단적 조언이 아닙니다.

더 읽을거리: Borsboom & Cramer (2013); Borsboom (2017), World Psychiatry; Epskamp, Borsboom & Fried (2018), Behavior Research Methods.